2010 올해의 음반
2010년 올해의 앨범- 1위.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2009/FarGo Music & Tunetable Movement)
http://bo-da.net/entry/983
Posted at 2010/12/31 00:00
Filed under feature/음악
어김없는 1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연말 결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여기저기 주위에서 올해는 예년에 비해 흉작이라는 얘기들도 들려옵니다만, 그럼에도 1년 동안 귀를 즐겁게 해준 음반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록과 팝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면 대신에 흑인 음악 진영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살뜰한 결과를 이뤄냈죠.
그 흔적은 저희의 연말 결산 명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이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내년엔 또 어떤 장르의 어떤 음악이 우릴 즐겁게 해줄지 기대를 가져봅니다.
역시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나온 음반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보다> 필진들이 올 한 해 즐겨 들었던 음반들은 이렇다, 정도로 이해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0년의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여: 권민기, 김봉현, 김윤하, 김창현, 김학선, 단편선, 문정호, 서성덕, 서정민갑, 이경준, 조성호
1.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2009/FarGo Music & Tunetable Movement)
1980년대 가요가 현대에서 다시 살 수 있는 로직을 고민했고, 또 길을 놓다.
그것도 아주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동시에 인간미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러기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경준)
간발의 차이로 가리온을 제치고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9와 숫자들의 앨범을 두고 '올해의 앨범'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고 푸념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9와 숫자들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고른 완성도는 이들이 포괄하고 있는 복고적인 장르의 원숙한 재조명과 함께 충분히 호평 받을 가치가 있다.
이미 지나간 흐름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13곡의 수록곡 모두를 관통하는 매끈한 멜로디와 아련하고 풋풋한 감성은 팝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를 선사하고 있다.
예전에 들어왔던 스타일로 다시 오늘을 말하는 그 진부한 작업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해낸 음악이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서정민갑)
이건 복고일 수도 있고, 계승일 수도 있고, 한 때의 유행일 수도 있다. 상관없다.
이름표 붙이기를 시작한다면 대부분의 사운드라는 것들은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록 음악'이라는 것이 추억이나 역사가 아니라 실재하는 취향의 일부로 바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이다.
(서성덕)
2. 가리온 [Garion 2]
(2010/Tyle Music)
6년 만에 돌아온 가리온의 앨범은 탄탄했다.
의외성을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장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MC 메타와 나찰의 랩은 톱니바퀴처럼 굳건히 잘 돌아간다.
1번 트랙부터 17번 트랙까지 여러 프로듀서들이 각기 다른 색깔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비트를 제공했고,
두 엠씨는 '가리온'이라는 하나의 빛깔이 들어간 일관된 내용으로 청자에게 보답했다.
그것을 증명해보인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조성호)
비트가 쩔고 랩 스킬이 어쩌구 하기에 앞서, 품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힙합'의 방법론을 훌륭히 지키면서 '음악'으로서 줄 수 있는 감동을 주었다.
힙합이나 하면서 서른 살 넘고도 끝까지 꿈이나 먹는 자들이 만들어낸 이정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kbhman.tistory.com/366 이곳에 있다.
블로그 조회수 올려보자는 심산이 맞다.
(김봉현)
3. 디즈(Deez) [Get Real]
(2010/Sony/ATV)
그냥 한 마디면 된다.
한국에서 지난 십 년 동안도 없었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앞으로 올 십 년 안에도 다시 만나기 힘들 R&B/소울 앨범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동안 본토가 어쩌고 된장에 고추장이 어쩌고 따지던 이들에게는 허무함을 깨닫게 해준 앨범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다 필요 없고 그냥 이렇게 '잘해버리면' 되는 거다.
(김윤하)
이 앨범을 듣고, 올 한 해 동안 나는 줄곧 고민했다.
한국에서 '흑인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하게 만들만큼 이 앨범은 훌륭하다.
무엇보다 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용기 있는 뮤지션만이 얻어낼 수 있는 성과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권민기)
4. 진보 [Afterwork]
(2010/SuperFreak Records)
오프닝 트랙 <I 27>을 플레이하자마자 느껴지는 왠지 모를 가벼운 질감; 그러나 이어지는 만화경 같은 트랙, <U R>을 듣고 반하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앱스트랙 힙합이 아님에도 서사의 전달보다는 질감과 음악적인 흐름에 보다 중점을 두어, 역설적으로 한국 땅에서 창작된 어떤 블랙 뮤직보다도 시적(poetic)인 감흥을 주고 있다.
다채롭다 못해 다소간의 방만함마저 느껴지는 야심찬 타이틀 트랙 <U R>이 [Afterwork]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영적인 콜라주로서 기능한다면, 이후의 트랙들은 보다 한 색상 한 색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인상; 하지만 각자의 맛이 간간하니, 또한 흠잡을 데가 없다.
인스트루멘탈이 강조된 와중 시종일관 관철되는 레트로한 튠이 어떤 고집마저 느끼게 하는, 말했듯 시적인 음반. 한국 블랙 뮤직의 가장 확고한 작업 중 하나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단편선)
EP 한 장과 몇 번의 피쳐링이 전부지만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근 5년 만에 불쑥 내놓은 이 앨범은 그가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이 철저한 비타협임을 증명한다.
드웰레이의 조금 더 투박한 버전을 연상시키는 이 디트로이트 사운드의 향연은 디즈의 정규 앨범과 함께 한국 흑인음악의 진보를 증명하는 2010년의 가장 뜨거운 결과물이다.
(김봉현)
5. 펜토(Pento) [Microsuit]
(2010/Soul Company)
구상과 구현 모두 훌륭하다.
평균을 왔다 갔다 하는 힙합과 일렉트로닉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던 터에 제대로 걸렸다.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순간은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완벽한 결합이 아니라 각각의 장르를 지지하는 팬들로부터 모두 외면 받는 장면을 떠올릴 때다.
그만큼 통상적으로 쓰이는 테마와 완전히 굳어진 버릇들로부터 벗어나 과감한 발상이 이루어진 작품이고 재킷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결과물의 질감과 정확히 일치할 때의 쾌감도 매우 크다. 발상도 발상이지만 치밀한 준비를 동반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는 나올 수 없다.
(문정호)
[Pentoxic]까지만 해도 '확신'하기는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펜토는 좀 물건인 것 같다.
(김봉현)
6. 가을방학 [가을방학]
(2010/Luova Music)
정바비는 노래를 안다. 어떤 노래가 좋은 노래인지.
게다가 좋은 짝까지 만났다.
인디가요의 마에스트로와 뮤즈가 만들어 낸 인디 팝의 수작, 가을방학은 노래가 가질 수 있는 깨알 같은 재미와 감동, 희극적 요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멜로디와 노랫말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21세기의 기념비적 인디가요.
(김창현)
정바비는 정말이지 미워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듯한 그의 영악함을 경계한 적이 있었고 그의 곡들에 실망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이 앨범에서 나는 다시 두 손 들었다.
(권민기)
7. 줄리아 하트(Julia Hart) [B]
(2010/Beatball Music)
이를테면 재확인.
음반의 포문을 여는 <하얀 마법 속삭임>의 영롱한 첫 번째 기타 리프를 듣자마자 "아, 줄리아 하트!"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본인에게는 소중하지 않은 디스크가 없겠으나) 줄리아 하트의 작업치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전작 [Hot Music]의 그늘을 한달음에 걷어내는 쾌작.
곡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굳이 언급하자면 '딱 줄리아 하트'다) 정바비의 가사 감각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데, 이를테면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 내가 좋아하고 있는지 / 너는 몰랐으면 좋겠어 / 너는 절대 모르길 바래"라는 노랫말 바로 뒤에 "아니 알게 됐음 좋겠어 / 아니 몰랐으면 좋겠어 / 아니 알아줬음 좋겠어 / 아니 역시 모르길 바래"를 붙이는 감각, 이런 '츤데레'를 이렇게 애틋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감각이라면 감각, 능력이라면 능력.
예전에 어딘가에서 언급했듯, 누구나 '청승계의 레전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정바비로선 가을방학과 더불어 2회 연속 2루타인 셈인데, 정작 [B]에 대해 정바비는 라이너 노트 격인 글에서 시크하게 "사실 이번 EP엔 아무런 컨셉이 없습니다.
그저 30여 곡 중 젤 좋은 노래들을 추렸을 따름입니다"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그 자체가 콘셉트건 아니건, 그가 현 홍대 앞 로컬 씬에서 가장 머리 좋은 음악가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편선)
조금 오버해서 얘기하자면, 그간 줄리아 하트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고생이 있었다.
어떤 음악을 하든 그야 밴드 마음이지만, 사랑스런 기타 팝의 정도(正道)를 걷던 줄리아 하트를 좋아하던 내 마음 한 구석이 그랬다.
그 와중 이 음반 [B]가 무심히 툭 발매되었다.
아, 창피하지만 듣는 내내 유학 갔던 착한 동네오빠가 초훈남으로 레벨업해 돌아온 걸 알았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영롱한 멜로디와 선수의 노랫말이 넘쳐흐른다.
앨범의 단 한 곡도 단 한 소절도 놓치고 싶지 않다.
(김윤하)
8. 코스모스(Cosmos) [Hanei Sky]
(2010/석기시대)
올해 초 이 앨범에 대해 "8년 동안 그(김상혁)에겐 어떤 일들이 있던 걸까?
그가 시종일관 전하는 쓸쓸함의 정서는 어디서 온 것일까?
별다른 수혜를 받지 않았던 복고적인 가요의 기운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들을 때마다 궁금증이 하나씩 더 생겨나는 신기한 앨범"이라고 쓴 적이 있다.
거의 1년이 지났어도 이 단평은 유효하다.
여전히 쓸쓸하고, 여전히 궁금하다.
(김학선)
[Hanei Sky]는 현재성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과거의 소리를 담고 있다.
의도적이라기보다 원래 그런 것처럼 들린다.
여기서 '원래 그렇다'는 말의 의미는 타임머신을 타고 집어온 듯한 앨범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보다는 1970~80년대 한국 음악에 경도된 어느 외국인을 보는 기분이다.
어떤 취향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은 충분히 가치 있다.
(서성덕)
9. 태양 [Solar]
(2010/YG Entertainment)
요즘 <Take It Slow>를 자주 듣고 있다.
이런 곡을 받고(고르고), 이런 보컬을 들려줄 수 있는 가수에게 기대와 믿음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Hot]이 기대와 가능성의 발판이었다면 [Solar]는 신뢰와 확신의 증거물이다.
(김학선)
[Hot]은 뛰어난 EP였지만 앨범에 대한 기대는 반반이었다.
지난 10여 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아이돌 앨범은 이번에 이만큼 했으니 다음엔 그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다.
특히 YG 엔터테인먼트의 최근 3년을 보면 좋은 EP는 여럿 있지만 좋은 앨범은 없다.
앨범에 성의를 담으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빅뱅의 [Remember]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앨범에 걸맞은 성의가 담겼고 장르에 몰두한 결과가 이상적으로 나타났다.
굳이 아이돌의 성과라 부르지 않아도 충분히 잘빠진 R&B 앨범이다.
(문정호)
10. 시와 [소요]
(2010/Sound Nieva)
2010년 한국, 정확히는 홍대에서 두 글자 이름을 가진 또 한 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앨범을 냈다고 기록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시와에게는 파격도 화제성도 특이함도 없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그녀의 성취는 궤를 달리한다.
(서성덕)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 앨범이지만, 올 한해 이것보다 많이 들은, 이것보다 좋은 앨범이 있었냐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시와는 '전형적인 여자 싱어 송라이터 음악'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만은 전형적이지 않다.
그의 목소리는 특별하다.
그리고 훌륭하다.
(김학선)
11. 조규찬 [9]
(2010/Vitamin Entertainment)
박완규와 함께 한 <Without You>는 정말 잘 만든 AOR, 혹은 멜로딕 하드록 트랙이다.
이는 조규찬의 수많은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재능들을 확인하고 싶으면 조규찬의 아홉 번째 앨범을 들으면 된다.
이 앨범 또한 조규찬의 일부겠지만.
(김학선)
세상을 살아가는 조금 더 따뜻한 방법.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주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누가 하면 철부지 짓이 되고, 다른 이가 하면 시가 되고, 음악이 된다.
이것은 시는 아닐지라도, 아주 낭만적이고 예쁜 멜로디의 뭉치들이다.
그리고 행복을 알게 된 남자의 언어다.
(이경준)
12. 비둘기 우유 & Bliss City East [Bliss City East 그리고 Vidulgi Ooyoo]
(2010/Electric Muse)
뒤쪽에 수록된 블리스 시티 이스트의 트랙들에 대해선 말하지 않도록 한다.
다소 복고적인 인상을 주는 슈게이즈, 그것을 빼고선 말할 것이 별로 없는 까닭에서다 (지루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탁월하지도 않다).
이 스플릿의 핵심은 필연적으로 앞선 쪽, 그러니까 비둘기 우유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구불구불한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인상적인 <Mosquito Incognito>로 시작하여 일렉트로니카의 어법을 차용한 <Dusky>와 명백한 슈게이즈 드림 팝 <Mermaid Queen>을 지나 <Goodnight Shining>까지; 어느 트랙 하나 도드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
특히 (진취적인 시도들을 선보이는) 앞선 트랙들과 달리 장르 컨벤션에 충실하면서도 밀도 높은 연주로 클래식한 감성을 자극하는 <Goodnight Shining>은 그들이 최소한 '어느 곳'엔가는 도달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는 기념비적인 트랙. 단 네 트랙으로 비둘기 우유는 그들 커리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달성하고 있다.
마치 유화물감이 덕지덕지 묻어 그 촉감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몇 점의 강렬한 추상화 연작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나뿐일까?
한국적인 상황에서라면,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소수로 구성된) 한국의 로컬 포스트-록/인스트루멘탈 씬의 표준을 몇 계단 이상 올려놓은; 수작 중의 수작.
(단편선)
스플릿 앨범은 각기 다른 두 뿌리의 만남보다 동일한 뿌리에서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가 만났을 때 더 재미있다.
여기서 한 팀은 사이키델릭과 포스트 록에 경도된 사운드를 더욱 단단하게 들려주고 다른 한 팀은 슈게이징과 드림 팝의 좋았던 시절을 비교적 가벼운 어법으로 구현했다.
전자가 밴드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면 후자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들추게 한다.
이것의 진정한 가치는 한 장으로 끝나도 아쉬울 게 없는 작업에서 다음을 얘기하게 만든 전자에 있다. 비둘기 우유가 전자다.
(문정호)
13. 크래쉬(Crash) [The Paragon Of Animal]
(2010/Sonicprism)
이토록 힘 있는 일갈을 듣기 위해 7년이 필요했다.
메탈이 나이를 먹은 만큼 이들도 세월을 탔다고 생각하겠지만, 대문을 여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것이 크래쉬의 사운드다. 윤두병의 복귀와 함께 크래쉬는 대한민국 헤비니스가 존재해왔고 또 존재해야 마땅함을 명시적인 태도로 입증해내고 있다.
(이경준)
제왕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왔다.
정통성을 고집하며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7년이라는 세월은 굉장히 긴 시간이다.
그 물리적 시간만큼 크래쉬는 이 앨범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년 멤버 윤두병의 합류는 굉장한 약이 되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머리를 쓰지 않고, 척박한 이 땅에 헤비메탈이라는 음악과 함께 정면으로 맞서며, 크래쉬가 돌아온 날을 선포했다.
(조성호)
14. 칵스(The Koxx) [Enter]
(2010/Happy Robot)
고작 20분도 안 되는 음반 한 장만으로 칵스는 올해 최고의 신인으로 불려도 좋을 파괴력을 발산했다.
일렉트릭한 사운드와 록을 결합시킨 다른 밴드들보다 훨씬 명쾌하고 선명한 사운드의 쾌감은 즉각적인 호응과 역동을 점화할 만큼 강력하다.
발 빠른 트렌드의 자기화가 갓 스물을 넘긴 이들에 의해 이렇게 또렷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 발랄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든다.
부디 우리를 더 춤추게 하라.
(서정민갑)
로킹하고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비트에 영미권의 트렌드를 접목시키는 영민함으로 칵스는 올해 우리 음악 씬에서 가장 핫한 밴드로 떠올랐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젊은 혈기는 큰 장점이고 특유의 '깝'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극도의 비호감을 종용하는 호불호의 문제작.
(김창현)
15.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Super Session]
(2010/Universal Music)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경력과 연륜을 지닌 이들이 다시 함께 돌아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해왔던 음악을 지금 자신들의 나이와 연륜에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의 가치는 특별하다.
이 정도로 해낼 수 있는 '선배님'들이 단지 이들만은 아닐 것이다.
부디 속속 돌아오시길.
(서정민갑)
이들이 모였다고 해서 감동이 3배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음반이 명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딘가에선 고루하고 어딘가에선 지루하며 어딘가에선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짠한 구석이 있다.
그것이 경험이고, 관록이자, 베테랑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이경준)
16.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유실물 보관소]
(2010/Pastel Music)
그가 잇고 있는 음악적 계보가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음악적 계보가 어떤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아찔하고 선명한 감성으로 수채화 같은 풍경들을 선사한다.
분명 이미 오랫동안 들어왔던 이야기이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멜로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래가 울리는 동안에는 마음이 촉촉해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변화와 그 변화를 만들어낸 음악, 어느 것도 유치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잘 만들었다고 말하기보다 마음을 흔들 줄 아는 송라이터라고, 또 그만큼 진심을 품고 있는 창작자라고 믿고 싶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이렇게 좋은 팝이다.
(서정민갑)
요리조리 꼼꼼하게 훑어봐도, 도무지 빠지는 데가 없다.
탄탄한 멜로디와 편안한 노랫말, 부담스럽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감성과 적절한 편곡, 적재적소에 배치된 객원보컬들까지. 그런 에피톤 프로젝트와 이 앨범이 일부 사람들에게서 종종 열외가 되는 건, 취향이니 존중해달라는 이유를 제외하면 여성 팬들이 많다는 점과 앨범이 꽤 잘 팔린다는 점뿐인 것 같다.
흔히 말하는 '90년대 웰-메이드 가요'를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그리고 잘 만든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을 한 장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체 이놈의 인기가 무슨 죄인가.
(김윤하)
17. 조정치 [미성년 연애사]
(2010/Lollipop Music)조정치는 세션과 작곡가, 편곡 파트너 등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아티스트지만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대가 높진 않았다.
실제로 이번 결과를 보면 메시지나 태도로 대변되는 음악도 아니고 여심을 건드리는 감성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부류와도 거리가 좀 있다.
그러나 능력과 인기가 동등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한철을 소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정치의 처음은 당시의 이한철에 비해 좀 더 유연하다.
잘 다듬어진 긍정의 힘과 담백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앨범이다.
특별히 무겁게 꼽을 만한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이 있다면 모를까, 올해 같은 배경에서는 딱히 차선에 둘 이유도 없다.
(문정호)
조정치의 데뷔 앨범은 단 한 명이 앨범을 구성하는 창의를 장악한다.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알맹이부터 껍데기까지. 그가 없었다면 이 앨범은 존재할 수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성년 연애사]는 조정치 그 자체다.
앨범 단위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성과다.
(서성덕)
18. 선결 [EP]
(2010/Electric Muse)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분히 긍정적인 의미에서라면) 난데없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줄리아 하트, 이스페셜리 웬을 거친 김경모가 돌연 런던에서 들고 돌아온 선결의 [EP]는 단 네 곡, 2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디스크지만 그 안에는 멋진 드림 팝 소품들이 담겨 있다.
특이한 점은 (물론 런던 뮤지션들의 조력이 작지 않았겠지만) 담긴 네 트랙을 통틀어 한국적인 미감(美感)을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인데, 단순한 곡조의 문제가 아니라 악곡을 구성하는 방식, 이를테면 다층적으로 레이어를 쌓아올려 층간의 차이를 바탕으로 질감을 구성해내는 구성하는 작업방식 자체가 낯설다(물론 다분히 한국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이야기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가? 결과적으로 [EP]는 (수많은 레이어들의 겹쳐쌓기에도) 마감이 잘 되어 듣기에 부담이 없는, 가득 찬 선율들의 '향연'을 선사해주고 있다. 말했듯 레이어들이 한 층 한 층 잘 세공된 덕분에 전체적인 인상을 훑을 때도 아름답지만 하나하나 분별해 들을 때도 결코 작지 않은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은 [EP]를 더욱 각별한 '그것'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코즈모폴리턴적인 감성이 도드라지는, 팝 오브 팝 오브 팝.
(단편선)
선결은 앨범을 통해 단 네 곡의 노래만을 들려줄 뿐이지만, 그 네 곡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심상(心象)은 올해 발표된 앨범들 중 단연 돋보인다.
기타를 베이스로 다양한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파장이 우리의 귀와 몸을 가볍게 어루만진다.
이곳이어도 좋고 저곳이어도 좋다.
한국이어도 좋고 아니면 또 어떤가.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아니 심지어는 한국의 인디음악과도 늘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꾸준히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김경모에게 특히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윤하)
19. 더 콰이엇(The Quiett) [Quiet Storm: A Night Record]
(2010/Soul Company)
딱히 새롭거나 파격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건실함을 보여준다.
콘셉트 앨범으로서의 일관성도 있고 두세 곡을 제외하면 비트의 완성도도 고른 편이다.
힙합과 소울의 경계를 가볍게 오가는 것도 흥미롭다.
안정감 있는 작품.
(김봉현)
더 콰이엇은 가사가 진부하다거나, 가사의 소재가 한정되어있다는 일부 아우성을 이 앨범에서 영리하게 극복해낸다.
'밤을 주제로 만든 앨범'이라니! 게다가 비트도, 랩도 모두 말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지금껏 수많은 한국 힙합 앨범들이 보여 온 '클리셰'(비록 상당부분 현실을 반영하고는 있으나 너무나도 우울하고 이제는 뻔하기까지 한)를 비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앨범은 그러한 클리셰를 뿌리째 흔들 힘마저 감추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 더 콰이엇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권민기)
20. 아침(Achime) [Hunch]
(2010/붕가붕가 레코드)
청량한 사운드와 드라이브감 넘치는 멜로디, 담백한 노래가 압권이다.
로킹한 개러지 록에서 보사노바 템포의 발라드까지 소화하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초창기 서니 데이 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심동의 서사성과 따듯함을 갖고 있다.
참으로 상쾌한 아침이다.
(김창현)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기도 한 데뷔 앨범이다.
그렇다고 악평을 듣기엔 앨범이 일정 수준 이상 매끄럽게 잘 빠졌다.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은 매우 효율적이었으며, 데뷔 앨범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두 번째 앨범에서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올해에 나온 수작으로 꼽았다
그들의 행보에 건투를 빈다.
(조성호)